읽고 싶은 시

수 선 화 / 정호승

윤소천 2019. 4. 21. 08:47

 

 

꽃 중에서도 죄 없는 꽃이 수선화로 피어난다

꽃 중에서도 용서하는 꽃이 수선화로 피어난다

꽃 중에서도 가장 사랑하는 꽃이

서귀포 검은 돌담 밑에 수선화로 피어난다

이른 봄에 수선화를 만나러 가면 추사 선생을 꼭 만난다

이듬해 이른 봄에도

추사 선생을 만나러 가면 수선화를 꼭 만난다

사람 중에서도 가장 죄 없는 사람이 수선화로 피어나

온 나라를 수선화 향기로 가득 채운다

겨우내 세한의 소나무에 앉아있던 작은 새 한마리

나뭇가지 사이로 푸드덕 흰 눈을 털며

우리는 오래도록 잊지 말자고

봄이 오지 않아도 수선화는 피어난다고

수선화가 피기 때문에 봄은 온다고

추사 선생처럼 수선화를 바라보며

바다로 가는 봄길을 걷는다